"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행복한 가정 속에서 밝게 자란 마리코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부모님과 한 군데도 닮은 곳이 없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마리코의 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고, 마리코는 화재의 원인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홀어머니와 자란 후타바는 밴드의 보컬로 TV에 출연하게 된다. 어머니는 후타바의 TV 출연을 극구 말리지만, 후타바는 막무가내로 출연해 우승하게 된다. 하지만 TV 출연 후 후타바에게는 알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후타바 역시 원인을 밝혀나가던 중, 자신과 얼굴이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 마리코 /
그날 이후로 나는 방에 틀어박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어떻게든 엄마와 닮은 부분을 찾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리고 날이 가면 갈수록 내 얼굴은 엄마의 얼굴과 점점 더 달라져 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실은 내가 아빠하고도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을...
불길한 생각이 점차 내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다. 혹시 내가 친자식이 아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나를 큰딸로 갖기에는 엄마와 아빠의 나이가 많았다. 아기가 생기지 않는 부부가 어디선가 여자애를 데려다 양녀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 후타바 /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보았다. 엄마가 이불을 깔다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내가 욕실에서 나온 것도 모르고 엄마는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분명히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세탁기 옆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어린 마음에 확신했다. 내 출생에 관해 남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이 있구나, 하고. 그것이 아빠에 관한 것인지 어떤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좀 전의 엄마 모습도 그날 밤과 같았다.
그렇다면 이번 일 또한 내 출생과 관계가 있는 일이고, 그래서 엄마를 괴롭게 만든 걸까? 내가 텔레비전에 나왔기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라도 했다는 걸까?
두 여자 주인공인 마리코와 후타바의 관점이 번갈아 가면서 스토리는 진행됩니다. 자신들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들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마리코와 후타바는 각자 고군분투하게 되는데요. 출생에 대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커지게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고뇌와 방황의 시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극복해 내는 내면의 과정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대체로 가벼운 듯 하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독자들에게 한 번쯤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철학적인 의문점들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유일하다고 여겨왔던 나 자신이 단지 오리지널의 클론일 뿐이라면? 또한 나와 유전자가 똑같은 다른 클론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면?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주인공인 마리코와 후타바의 상황을 서서히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독자들은 주인공들의 상황이 마치 자신의 일인 듯 빠져들게 됩니다.
루이비통의 이미테이션이 싸구려로 팔리듯, 아무리 귀중한 문서라도 복사본은 간단히 파기되듯, 그리고 위조지폐가 화폐로 통용될 수 없듯이 내 존재에도 이렇다 할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그 사람, 아마 나의 본체일 그 사람이 분신에 지나지 않는 나를 사랑해 주기를. 그렇지만 그녀는 사랑해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증오를 드러냈다. 기분 나쁜-. 분명히 그럴지도 모른다. 싫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분신이 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오리지널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 아닐까?
또 다른 나-.
상처입고, 지치고, 절망한 끝에 내가 찾게 된 것은 나와 같은 운명을 걷고 있는, 또 한 명의 분신인 것이다.
"평소 레몬은 어떻게 먹어?" 내가 물었다.
"물론, 이렇게."
내 눈앞에 있는 또 한 명의 나는 아침 햇살에 하얀 이를 빛내며, 아직 약간 푸른빛이 남아 있는 레몬을 베어 물었다.
마리코도 좋고 후타바도 좋으니 주인공의 관점으로 빠져들어 책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재미도 감동도 두 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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