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카지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특히 욕심이라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이 어떤 모습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삶을 추락시키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욕심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만 카지노에서 사람들은 곧잘 이 사실을 망각한다. 아니, 망각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쉽사리 욕심의 포로가 되어 자신을 망치기 일쑤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돈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항상 인간이 돈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나의 생각이다. 돈에 집착할수록, 욕심을 낼수록, 그리하여 돈에 지배당하게 되는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채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가난이 가져다주는 자유로움이 물질의 풍성함보다 훨씬 값진 것임을,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느낄 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이겠다.
사람이 도박을 할 때의 심리를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필자는 바카라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때 돈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주식을 잠시 접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당시에는 도박의 심리로 접근했었던 탓이라 그런지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에 크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독했다. 살면서 도박을 단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크고 작음의 차이일 뿐 누구나 도박이란 것을 해보았을 것이다. 돈을 땄을 때의 쾌감과 심리적 안정감, 돈을 잃었을 적의 초조함과 본전의 심리, 대부분의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주식에 빠져 있을 때에 본전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돈을 불리는 방법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돈이라는 물질적 욕망이 이성을 지배했었던 것인지, 내 생각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수익률이나 금액에 연연하다 보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돈을 벌 수 있는 확률과 잃을 확률이 각각 50%라면 계속 거래를 하면 단순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본전이 유지 되겠지만, 결국 수수료 때문에 재산은 마이너스로 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론 차트나 재무재표 분석으로 수익의 확률을 높일 수 있겠지만, 거래 횟수가 많을수록 결국은 증권사 좋을 일 시키는, 즉 죽 쒀서 개주는 판국이다. 지금에 와서야 재무재표 분석하여 최대한 거래 횟수를 줄이는 장기 투자로 가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란 걸 알았지만 말이다.
도박도 마찬가지다. 카지노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원랜드의 주가는 오늘도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날라가고 있다. 사견으로 도박은 금액이 크면 클수록, 돈을 따던지 잃던지 딱 한 번만 하고 말아야 한다. 돈을 잃으면 본전 생각에 더 많은 재산을 날릴 수 있다. 돈을 땄을 때에는, 이 때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손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전 재산을 탕진 할 가능성이 높다. 사기 도박꾼들의 수법을 봐도 사람의 이 같은 심리를 잘 이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도박을 계속 할 생각이라면 기대 수익률을 확 낮추고 본전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카지노'라는 이 책에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본전이 무너졌을 때에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허물어질 수 있는지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주인공인 서후와 한혁의 플레이를 보더라도 본전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미세하게 어려운 방법으로 돈을 불려 나간다.
그 삭막한 공간인 카지노에서조차 돈에 지배당하게 되는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주인공인 서후를 보면서 우리의 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물론 돈의 절대성과 가치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현재 사회는 그 가치 하나만 바라보고 쫓아가면서 물질적인 가치보다도 중요한 시간이나 정신적 가치를 낭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도 돈이라는 절대성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작가의 말마따나 물질의 풍성함만을 쫓으면서 노예로 사는 삶이 아닌 지배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다.
P54
청년은 6,600달러어치의 칩을 쌓아놓은 채 5달러나 10달러 베팅을 계속했다. 100달러나 200달러 벳을 해도 됐을 곳에서조차 작은 베팅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옆에서 같이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많이 따거나 전부 잃거나 승부가 났지만 청년의 칩은 뚜렷하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것은 청년의 칩이 느낄 수 없는 속도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107
"장기를 헐값에 파는 겁니다. 도박이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허파든 콩팥이든 팔 수 있는 건 다 파는 거죠. 엊그제 수술을 하고는 손에 쥐어진 위로금 몇 푼으로 저렇게 도박을 하는 거랍니다. 도박을 하고 있을 때는 통증도 못 느껴요."
"모두들 부자였습니다.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자들이 모두 한때는 대단한 부자였어요."
P120
"문제는 은교 씨 말대로 그럼 다른 일은 않고 카지노 게임만 하면 이길 수 있냐는 것인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카지노 게임만 전문적으로 하게 되면 내면이 피폐해져요. 내면이 피폐해지면 도박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잃게 돼요. 자기모순이죠."
P151
서후는 자리에 앉아 첫 베팅에 2만 원을 걸었다. 2만 원이 지자 다시 2만 원을 걸었다. 이번에는 이겼다. 그러나 다음의 2만 원이 지고 그 다음, 그 다음도 져 도합 6만 원을 잃었다. 서후는 이번에는 8만 원을 걸었다. 이번에는 맞았다. 서후는 한 판도 빠지지 않고 베팅하여 어느 땐 맞고 어느 땐 틀리고 했지만, 최저액부터 베팅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러 번 틀렸어도 크게 한 번씩 베팅하여 본전은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본전에서 몇 만 원 따고 있었다.
P180
바카라에서 금기로 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맨 첫 번째가 맥시멈 베팅이다.
1억을 가진 사람이 500만 원이 맥시멈인 테이블에서 500만 원을 베팅해 졌다고 치자. 그러면 이 사람이 맥시멈 베팅을 계속할 때 500만 원을 찾아올 확률과 나머지 9,500만 원을 다 잃을 확률은 정확히 반반이다. 다음 그림이 좋으면 찾아오는 거고 나쁘면 다 잃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바뀔 때마다 손님은 틀리게 되어 있다. 좋은 그림이 나와 상당히 잘 맞힌다 하더라도 바카라에서는 반 이상 맞히기가 어렵다. 물론 손님이 500만 원을 가지고 1억을 딸 확률도 반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손님은 딸수록 몸조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길 때는 조금 이기고 질 때는 많이 지게 된다.
P195
"도박의 기본은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지금은 목표를 이루었으니 마음이 느슨해져 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자신감이 생겨 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에서 가장 나쁜 것이 바로 그 자신감이다. 마치 승부사니 승부 근성이니 뭐니 하는 말이 가장 나쁜 것처럼."
P336
"게임을 100 단위로 끊으세요. 목표가 300만 원인 날은 100만 원씩 세 번은, 800만 원인 날은 100만 원씩 여덟 번을 이기란 말이지요."
"첫 벳이 5나 10이어야 해요. 그것도 기회라고 생각될 때에만 말이지요."
"계속 그렇게 조금씩 벳을 하는 거에요. 이긴 돈이 쌓이면 한번에 다 벳을 해도 좋아요. 그러나 그 벳이 죽으면 다시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한 벳을 해서 본전을 지키면서 게임을 해야지요."
P380
"카지노 게임은 질 때가 아주 중요해요. 하지만 지는 건 학습으로 배워지지 않아요. 오랜 시간에 걸쳐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되지요. 지금 두 젊은이는 균형감이 없다는 말입니다."
P427
"카지노 게임이란 그런 게 아니에요. 잃어야 해요. 잃으면서 슬픔과 고난을 겪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혜를 터득하는 거지요."
"카지노 게임이란 본래 지는 겁니다. 숱한 패배 속에 살아남는 지혜를 터득하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이에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도박이란 본능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인간의 숙제에요. 그러나 두 사람은 도박에 이기게끔만 설계되었어요. 많은 노름꾼들이 다 그렇지요. 이긴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주변을 모두 황폐화시키고, 본인 역시 삶을 그르치고 말지요. 지금 두 사람에게 패배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두 사람은 기계적으로 돈을 위해 일하게 되고, 결국 돈에 치여 삶을 망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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