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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조커(Joker, 2019) 뒷북 후기, 우울증인 사람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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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커를 이제서야 보았다. 작년에 상영된 영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영화를 많이 안봤고 배트맨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거의 9점에 가까운 네이버 평점에 이끌려 조커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원래 영화 후기 같은거 귀찮아서 잘 남기지 않는 필자지만, 보고나니 생각이 많아져서 뒷북이지만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 조커이다. 그만큼 여운이 상당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잘 만들었고, 그만큼 사람의 감정을 헤집어 놓는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물 흘리고 있는 조커

 영화 조커는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슬프지만 억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 머리속에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지만 코미디언인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크를 생각해내야 하는 주인공인 아서 플렉의 모습이 마치 고달픈 현실에서 억지 긍정과 꿈을 이루기 위한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아서 플렉은 유아 시절의 학대 경험으로 인한 발작증상이 있는 정신장애인이다. 일종의 증후군이지만 아서는 주로 불안할 때마다 웃는 증상으로 표출된다. 삶보다 더 가치 있는 죽음을 바라고, 태어나서 단 1분도 행복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던 아서 플렉이 심리적 불안의 증상으로 발작 웃음이 터진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모순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고 뇌에 충격을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가짜 웃음'을 강요 받았던 아서는 위기 순간마다 이 가짜 웃음을 터뜨림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화감과 동시에 먹먹한 감정이 들게 한다. 슬프지만 감정을 감추고 연기할 수 밖에 없는 가짜 웃음은 치열한 세상을 살기 위한 주인공의 처절한 생존수단이었다.

 

 불행한 사람이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가 '남을 살리기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라고 한다. 더 불행한 사람을 도우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자존감을 높이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행복과는 동떨어진 인생에서 코미디언을 꿈꾸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아서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남들처럼 부와 성공이 아닌 '웃음과 타인의 관심' 이다. 남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찾듯이 아서는 남에게 웃음을 선사함으로써 자신의 '진짜 웃음'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항상 가짜 웃음을 연기하고 정상인과는 웃음 포인트가 다른 아서지만, 영화 중반 쯤에 찰리 채플린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상적인 공감능력이 없는 주인공이지만 찰리 채플린의 연기에서 자신과 비슷한 동질감을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처럼 코믹하고 성공한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항상 억압받고 감정을 숨기고 살아온 아서지만, 첫 살인을 하면서 마음속에 죄책감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희열감이 더 자리잡는다. 분노와 공포로 떨리던 마음도 잠시, 춤을 춤으로써 가슴 한 구석에 숨기고 있던 조커의 본성을 슬며시 드러낸다.

 

 

 

 

 사람을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는 힘은 언제나 '희망과 사람'이다. 공감능력이 없어 평범한 농담조차 떠오르지 않는 아서에게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은 원래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었다. 자신의 곁에 있던 사람인 여자친구조차 망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본인의 정신장애의 원인이 어머니의 학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서 내면의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서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그토록 힘겹게 올랐었던 계단이었건만 모든 불행의 씨앗인 어머니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른 아서에게 일말이나마 양심의 가책은 없다. 춤을 추며 삶의 무게를 한순간에 내려놓은 이는 아서가 아닌 조커이다. 모든걸 포기하고 더이상 잃을게 없는 조커에게 더이상의 가짜웃음은 이제 없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처절한 복수만 있을 뿐, 그리고 그는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영화 조커는 인간의 반사회적 심리와 범죄형 인간이 되는 과정을 너무나 잘 묘사하였기 때문에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나 자신조차도 영화 보는 내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암울한 기분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본인의 인생이 비극보다는 코미디고 코미디는 주관적이라는 조커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사람의 가치관은 항상 경험을 수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주위 환경과 사람, 인생 경험을 바탕삼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모든 가치관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대다수가 따르는 그것이 옳음이고, 정상적인 사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쌓은 조커로서는 그 주관적인 가치관이 항상 부당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 조커들이 무수히 잠재하고 있고, 표면밖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모든 가치관이 주관적이라고 한다면 우리한테는 이들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판단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본인 자체도 희망도 사람도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고 또 처해진다면 당장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의 사람이 그 반대인 내일이 없고 소외된 사람에게 본인의 가치관으로 도덕성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는것 만큼 역겨운게 있을까? 물론 이 사실 자체가 범죄자들의 행위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살인의 정당성 이런 진부한 얘기를 떠나서, 범죄자들에게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가 없으니 말이다. 

 

 

 

 필자는 극한에 몰린 사람은 대개 4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1. 자신 스스로에게 표출 (자해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2. 다른 사람에게 공격성 표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

 3. 운명에 순응 (보통 사람)

 4.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서 헤쳐나감 (주로 위인들이 많음)

 

 

 아서는 꼭 사람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했을까? 코미디언이 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주인공의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뭔가 안타까운 영화 조커이다.

 

 

 

  PS. 우울하거나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안보는걸 추천합니다. 외로움이나 소외감 등 이런 감정을 경험해 본적이 있고 정신적으로 극복한 사람이라면 느끼는 바가 많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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